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는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최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본 드라마 《참교육》. 이 드라마는 기존의 교육 드라마와는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 학교폭력과 소년범죄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기존의 훈계와 상담, 생활지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강력한 물리적 제재를 가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특히 피해자는 계속 생기는데 가해자는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거나, 학교의 미온적인 대응 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현실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작품 속에서 해소했던 것 같다.
그간 나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며 비폭력 입장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폭력은 문제를 순간적으로 멈추게 만들 수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멈춘 것과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행동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맞고 자란 아이는 폭력을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학습해, 결국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힘으로 제압하려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진정한 교육은 물리적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이라고 믿어 왔다. 결국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잇따르는 소년범죄와 학교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담과 훈계만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가족상담 현장에서도 반복적으로 심각한 폭력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을 만나곤 한다. 단순히 "아직 어리니까 봐주자"는 접근도, 그렇다고 "성인처럼 처벌하자"는 접근도 모두 한계를 드러낸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재범을 막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폭력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책임일까.
나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아이를 때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심각한 폭력과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가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명확하게 묻지 못하는 현실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강력한 제재'와 '폭력'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강력한 제재란 법과 제도를 통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출석정지, 강제전학,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피해자 접근금지와 같은 조치는 매우 엄중한 제재이지만 폭력은 아니다. 반면 성인이 아이를 때려 굴복시키는 것은 순간적인 공포를 줄 수는 있어도 진정한 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폭력이 문제 해결의 방식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남길 위험도 있다.
불교 역시 자비를 말하지만, 그것이 범죄를 용서하라는 뜻은 아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위험한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그 책임을 폭력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엄격한 책임과 비폭력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물론 현실은 이상처럼 단순하지 않다.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소년범들은 기존의 상담과 교육만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촉법소년 제도와 보호처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재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개입은 분명 필요하다.
나는 《참교육》을 보며 이 작품이 단순히 폭력을 미화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우리는 이런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그 감정의 근원에는 폭력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책임이 살아 있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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