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해 보여도 지금 걷고 있다면
최근에 상담을 했던 아이에게서 유독 자주 들었던 말이 있었다.
“제가 잘하고 있는게 맞을까요? 남들은 이미 그만큼 했는데 저는 아직도 여기에요.”
어떤 문제를 상의하러 왔든, 대화의 끝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끝났다. 진로 고민을 하다가도, 관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가도 본인이 지금 제대로 된 길 위에 있는지를 물었다. 처음엔 그것이 목표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느끼게 된 것은, 정작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한 번도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 아이가 보고 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위치였다.
그렇게 타인만을 바라보고 걷다 보면 내 발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점점 보이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위치만 선명해진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늦은 건 아닌지, 뒤처진 건 아닌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공부를 늦게 시작한 그 아이는 최근 상담이랑 여러 시도들을 하면서 충분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잘 돼가는 듯하다가도 어떤 한 주는 마음처럼 쉽지 않을때면 탈진한 얼굴로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 얼굴이 안쓰러워 잠시 쉬어가라고 이야기하면 “쉬면 안 될 것 같아요.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요.” 라고 의기소침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의 하루는 오르막만 있는 지도 같았다. 내리막도 잠시 앉아 쉬는 구간도 허락하지 않은 채 걷고 또 걸었다. 삶은 원래 직선이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고, 잠시 머무는 구간도 필요한 법인데, 늦게 진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조바심이 가득했던지 세상이 정한 정상이라는 이름 앞에서 늘 긴장한 채 살고 있었다. 그렇게 힘이 잔뜩 들어간 과정은 어느 순간부터 삶을 견디는 일이 되어 있었다. 그가 지쳐 있던 이유는 게을러서라기보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쉼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언젠가 내가 건넸던 말은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힘을 빼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말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대로면 정말 답이 없다구요.”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서는 내 말뜻을 이해한 듯했다. 힘을 뺀다는 건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믿어보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하루 이만큼 해낸 것을 인정하는 일, 잘 되지 않는 하루도 충분히 버텨낸 하루였음을 알아차리는 일임을.
그 태도를 조금씩 연습하면서 최근 한번은 자기가 한 일에 “작긴 했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 한마디가 다음 발걸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인간의 위대함을 가까이서 보는 가장 뭉클한 순간 중 하나다.
상담을 하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정상에 도착한 사람이 상담실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과정 한가운데서, 여전히 걷고 있는 채로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정 속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부디 오늘 하루의 끝에 "잘 가고 있는지" 를 의심하기보다, "지금 걷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어쩌면 그 말 하나가, 정상에 대한 조바심보다 훨씬 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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